간체자를 가르키자
중국 사람들은 요즘 좀 우쭐해 있다. 뭔가 뻐기는 듯한 표정이다. 좋게 보면 긍지에 차 있고, 나쁘게 보면 교만해 보이기도 한다. 감추려들지도 않는다. “중궈 자오아오(中國驕傲)”라며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웃기까지 한다. 우리에게는 발암물질이 든 맥주에, 발암물질로 처리한 횟감의 이미지로 다가오지만, 신문·TV·인터넷 등 중국 미디어들은 그런건 잘 모르는 일이며 “중국은 세계최고”라는 말을 하기에 바쁘다.
지난 11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는 ‘정화(鄭和) 60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명(明)나라 때인 1405년 장군 정화가 세계일주급 항해를 시작한 것을 기념하는 대회였다. 대회장인 중국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겸 국무원 부총리 황쥐(黃菊)는 이 자리에서 “중국은 이미 육상(陸上)대국일 뿐만 아니라 해양대국이었다”고 선포(?)했다. 대회를 전하는 TV와 인터뷰한 초등학생은 상기된 표정으로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사람은 컬럼버스가 아니라 중국 사람이었다니 정말 자랑스러워요”라고 말했다.
이어 13일에는 중국 중앙은행이 외환준비고가 6월 말 현재 작년 같은 기간보다 무려 51.1%나 늘어난 7110억달러라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중국 미디어들은 “수중유량, 심중불황(手中有糧 心中不恍·내 손에 곡식이 있으면 마음에 두려움이 없다)”이라고 떠들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아시아 금융위기 때 많은 나라들이 외환준비고가 모자라 고생을 했으며, 외환준비고는 충분한 것이 좋다”는 진단을 곁들인다.
북한의 6자회담 복귀도 중국의 자랑거리 목록에 들어갔다. 중국 중앙TV(CCTV) 채널 4는 13일 밤 6자회담 재개 배경을 분석하는 30분짜리 전문가 좌담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이 프로그램의 타이틀이 “조선 핵문제 대화 분위기 재현은 중국의 공(中國功 不可沒)”이라는 것이었다. 선후야 어쨌든, 탕자쉬안(唐家璇) 외교담당 부총리가 평양으로 가서 김정일을 만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한 결과 북한 핵문제가 마침내 대화의 테이블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자랑거리는 또 있다. 오는 20일에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제1회 ‘세계 한어(漢語·중국어) 대회’가 열린다. 중국 외교부를 비롯한 11개 정부 부처가 주관하는 가운데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주재할 예정이다. 그 의도는 한마디로 중국어를 세계 공용어로 만들겠다는 것이며, 대회에는 전 세계 70개국에서 중국어 교육 관련자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그런 분위기이니 중국 사람들이 우쭐할 만도 하다. 또 요즘 중국 사람들이 뻐길 만하다는 것은 이미 세계가 다 인정하는 일이다. 그런 중국을 보고 있자면 늘 잊지 못하고 있는 문제가 떠오른다. 바로 간체자(簡體字·중국식 약자)를 우리 학교 교육에서 가르치는 문제다. 우리가 가르치는 한자는 번체자(繁體字)이며, 번체자만 아는 웬만한 한국의 ‘배운 사람’들도 중국 공항에 내리는 순간 까막눈이 되기 때문이다. 중국 사람들 역시 대부분의 문자 생활을 2235자의 간체자로 하고 있으며, 우리가 쓰는 번체자 앞에서는 고개만 갸우뚱거린다.
한마디로 간체자를 모르면, 중국의 기본 문자를 모르는 것이다. 중국에 관한 많은 정보를 담은 중국 인터넷 사이트들도 간체자를 모르면 무용지물일 뿐이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이미 1990년대 초에 싱가포르 사람들이 간체자를 배우도록 한 일이나, 최근 타이완(臺灣)의 간체자 배우기 열풍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잘 나가는 중국의 간체자를 배우는 것은 영어 알파벳를 배우는 것과 같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