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경제현황

차이나 달러 세계의 돈으로 뜬다

데코차이나 2005. 9. 18. 11:45
중국 런민(人民)은행이 지난 7월 21일 저녁 위안(元)화 절상과 환율제도 개혁을 전격 발표한 다음날인 22일. 이날 오전부터 홍콩 주요 은행의 위안화 예금 창구는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다.

홍콩 3대 은행 중 하나인 항성(恒生)은행의 커칭후이(柯淸輝) 부회장은 “평소 신규 위안화 예금액이 하루 평균 500만위안에 그쳤는데 이날 하루에만 10배 정도 많은 5000만위안(약 62억5000만원)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대부분 홍콩달러 등을 위안화로 환전해 예금했다. 중소은행인 둥야(東亞)은행도 사정은 비슷해 평일보다 위안화 예금액이 4~5배 정도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홍콩 금융기관에 예치된 위안화 예금고는 작년 말 121억위안(약 1조5125억원)에서 지난 5월 말 현재 198억위안(약 2조4750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글로벌 금융 허브인 홍콩에서 위안화 수요가 이처럼 늘고 있는 것은 ‘위안화(차이나달러·China dollar)’의 국제화와 위상 상승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차이나달러는 이미 화교권 경제가 사실상 지배하는 동남아를 장악한 데 이어 세계 금융시장을 좌지우지하는 ‘태풍의 눈’으로 지목되고 있다. 러시아가 올해부터 중국과의 국경 무역에서 달러화를 거치지 않고 위안화와 루블화로 직접 결제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비롯해 몽골, 베트남, 키르기스스탄, 북한 등은 중국과 무역시 위안화를 이미 결제통화로 쓰고 있다.
 
홍콩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는 중국인 여행객이 아무 제한 없이 위안화로 쇼핑하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는 홍콩 고급 상가인 진종(金鐘) 퍼시픽 플레이스나 통루완()·몽콕(旺角) 일대에는 홍콩달러와 위안화를 1 대 1로 쳐주는 상점이 갈수록 늘고 있다. 통루완의 위안화 환전상인 천융콴(陳永寬·48)씨는 “요즘 고객의 40% 정도는 위안화가 내년 말까지 5~10% 정도 추가 절상될 것으로 예상하는 환(換)투자자들”이라며 “가끔 위안화 품귀 현상이 빚어질 정도”라고 말했다.

모건스탠리를 비롯한 국제 금융기관도 차이나달러가 조만간 미국달러와 유로화에 버금가는 3대 기축통화로 자리잡을 것이라는 예상보고서를 일제히 내놓고 있다. 홍콩 소재 크레디트 스위스퍼스트보스턴(CSFB) 아·태 본부의 타오동(陶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차이나달러는 1970년대 오일(oil)달러와 1980년대 재팬달러와 맞먹는 파괴력을 몰고 올 것”이라며 “세계 경제에서 ‘차이나달러 시대’ 개막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2008년 올림픽 전에 1조달러 넘을 것
세계가 차이나달러의 파워에 이목을 집중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올 6월 말 현재 711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엄청난 외환 보유고다. 중국 경제권에 실질적으로 편입된 홍콩(1220억달러)을 합치면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8300억달러를 거뜬히 넘어 세계 1위인 일본(8435억달러)과 맞먹는 수준이다.

더 놀라운 것은 가공할 만한 외환보유고의 증가속도다. 2001년에 2000억달러이던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2년 만인 2003년에 4032억달러로 치솟았고, 작년 말에는 6099억달러로 6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또 그로부터 불과 반 년 만에 1010억달러가 늘어 1년 전과 비교해 51.1%나 급증했다. 왕즈하오(王志浩) 스탠더드차터드은행 중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말까지 중국의 외환보유고는 913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세계 1위인 일본 추월도 시간문제”라고 분석했다. 이런 추세라면 2008년 베이징(北京)올림픽 이전에 1조달러를 돌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미국 달러화의 유입은 동시에 위안화 유통액 급증 현상을 낳고 있다. 중국 내와 해외에서 유통되는 위안화는 잔액 기준으로 2001년 1조5688억위안에서 작년 말에는 2조1468억위안으로 3년 만에 50% 정도 증가했다.

더욱이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분출하는 중국경제의 에너지와 맞물려 갈수록 가속도가 붙는 양상이다.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으로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매년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데다, 연간 수백억달러에 달하는 무역 흑자 그리고 위안화 추가절상 등을 겨냥한 핫머니(단기성 투기 자금) 등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미국 국채 매각하면 불황 일어나
특히 중국은 서방 선진국과 달리 외환관리를 국가(외환관리국, 실제로는 런민은행)가 직접 통제하고 있어 오일달러나 재팬달러보다 파급 효과가 상상 이상으로 클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산업은행 홍콩법인의 박기순 박사는 “차이나달러의 파워를 이용해 중국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국제금융시장의 흐름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현재 중국은 막대한 외환보유고 가운데 약 2000억달러 정도를 미국 재무부 발행 국채(國債)에 투자하고 있는데, 이를 일부 매각할 경우 미국의 금리 인상과 경기 불황이라는 연쇄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작년 말 ‘중국은 미국 국채 보유를 줄일 수도 있다’는 위용딩(余永定) 런민은행 통화정책위원의 한마디는 세계금융시장을 한바탕 뒤흔들 정도로 큰 충격을 주었다. 일본의 미국 국채 투자액은 7000억달러가 넘어 중국보다 훨씬 많지만 일본의 대외경제정책은 미국의 구속을 많이 받는 반면 중국은 미국에 대해 독자노선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나달러의 위력은 일본과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차이나달러의 급부상과 비례해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입김이 갈수록 세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도한 외환보유고 압박 완화와 선진기술 흡수 등을 겨냥해 외국의 유명 브랜드나 기업을 통째로 인수하려는 움직임이 단적인 예다.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하이얼(海爾)의 유노컬 및 메이택 인수는 실패로 기록됐지만, 롄샹(聯想)과 상하이자동차(上海一汽)는 IBM 컴퓨터 부문, 쌍용자동차 합병 등에서 각각 성공을 거뒀다. 카자흐스탄의 석유업체 페트로카자흐스탄을 인수한 것도 또 하나의 성공사례다. ‘배를 빌려 바다로 나간다(借船出海·지에촨추하이)’와 ‘밖으로 나간다(走出去·조우추취)’ 전략이 차이나달러 시대 개막을 앞두고 빛을 발하고 있다. 덕분에 1999년 2억달러 남짓하던 중국의 해외기업 인수 금액은 지난해 20억달러를 넘어 5년 만에 10배 이상 폭증했다.

불똥은 한국에도 떨어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 네트워크 게임업체인 성다(盛大)가 한국 게임업체인 액토즈소프트를, 상하이자동차가 쌍용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올 들어 중국 국영기업들이 인천정유, 대우일렉트로닉스 같은 알짜 대형 매물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한·중 간의 기술격차가 갈수록 좁혀지는 마당에 차이나달러를 무기로 한 중국의 한국기업 사냥이 한국경제의 자생력을 갉아먹을 것이라는 위협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블룸버그뉴스의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위안화 가치가 올라갈수록 세계 각국의 많은 우량 기업이 중국 손에 더 싸게 넘어갈 수 있다”면서 “중국 자본의 물결이 제너럴모터스(GM)나 마이크로소프트(MS)에도 언제 몰아닥칠지 모른다”고 했다.

‘미국 사들이기’ 본격화 가능성도
중국 정부는 이미 지난 5월 해외진출 허가 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해외투자 한도액도 33억달러에서 50억달러로 늘리는 한편, 경쟁력 있는 기업의 해외투자를 정책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선언해 경쟁국들의 우려감을 한껏 자극하고 있다.

차이나달러 급부상에 대해 경계령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위안화 가치가 오른 만큼 중국의 구매력이 늘어나면 국제 외환·주식·원자재 시장 등에서 중국이 메가톤급 파워를 행사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차이나달러의 위력은 중국이 지난해 국내 원자재 투자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수입규제를 완화하기가 무섭게 석유·철광석·비철금속 등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세계적인 원자재 확보전쟁이 벌어짐으로써 이미 입증됐다. 중국은 현재 세계 철강무역의 약 25%, 구리 및 니켈 교역의 20%를 차지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의 철강·원탄·화학비료·화학섬유·곡물 소비 국가다.

CSFB의 타오동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970년대 석유파동으로 야기된 달러의 과도한 중동 유입(오일달러)이 브래튼우즈 체제를 위협할 정도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으며, 1980년대 재팬달러도 미국 부동산 시장에 대거 유입돼 자금흐름의 왜곡을 초래했었다”고 말했다. 차이나달러 역시 어떤 형태로든 국제금융시장에 예상치 못한 충격을 가할 수 있다는 얘기다.

1980년대 일본이 막대한 무역흑자와 엔고(高)를 바탕으로 미국 자산 매입에 나선 것과 같이 중국의 ‘미국 사들이기(Buying America)’가 본격화될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주목되는 현상은 막강한 차이나달러의 파워를 무기로 중국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방국가와의 섬유 전쟁에서 사실상 전면전을 선포하는 등 외국의 경제압력에 맞서 중국이 ‘노(No)’라고 응수하는 사례가 부쩍 잦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위안화 절상에 따른 강력한 차이나달러는 중국이 세계경제를 리드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또는 중국의 경제 패권주의를 앞당기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기에다 중국의 전반적인 산업 및 수출입 구조 고도화와 해외 여행객 급증 같은 부수 효과도 예상된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쑨페이(孫飛) 박사는 “인민폐 평가절상을 계기로 중국은 자원집중형 제품보다는 고부가가치의 제품 수출에 주력하게 될 것”이라며 “산업구조가 고부가가치·첨단기술 중심으로 이동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안화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지난해 3000만명에 육박한 중국인의 해외여행이 한층 활성화할 경우 글로벌 관광산업의 판도 변화도 점쳐진다. 중국 여행객의 1인당 해외 소비 지출액은 이미 지난해 987달러(약 99만원)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중국인 ‘큰손’ 관광객을 한 명이라도 더 잡기 위해 동남아나 한국은 물론 영국, 프랑스 같은 유럽 선진국에도 위안화를 직거래하는 상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이미 구매력 기준으로 미국달러에 이어 세계 2위 자리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차이나달러는 세계의 기축통화로 비상하는 차원을 넘어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인의 일상생활에까지 크고작은 변화를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ps. 이미 예견된 일 입니다. 점점 중국의 입김이 커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