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치·사회

잊혀져 가는 영웅 .... 마오

데코차이나 2005. 8. 3. 00:34

 

<그 옛날 당나라의 도읍 장안이었던 산시성(陝西省) 시안의 한 시장에서 액자 등속을 파는 행상.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는 있어도 마오쩌뚱 액자는 없었다.>

  흔히 ‘마오’(毛)로 통하는 ‘마오쩌뚱’(毛澤東)은 현대 중국의 영웅입니다. 외세의 침입으로 도탄에 빠진 중국을 위기에서 건져낸 인물이죠. 덩샤오핑(鄧小平)이 문화대혁명 시절 시골 농장에서 똥 치우는 일을 정도로 핍박을 받았으면서도 집권 이후 그에 대한 비난을 자제했습니다.

 

 실용주의의 화신이라는 덩이 이 '현대 중국의 상징'을 비난해서 화를 자초할 리가 없었겠죠.


  지금도 중국 각급 학교는 의무적으로 ‘마오쩌뚱론’을 공부합니다. 제가 다닌 교통대는 대학 교육을 받지못한 일반인을 상대로 통신대학 과정을 열고 있었는데, 몇시간 안되는 이 통신대학의 출석 수업과정에도 ‘마오쩌뚱론’ ‘덩샤오핑론’ ‘마르크스레닌이즘’ 시간이 있었습니다. 


  중국 대학생들한테 물어보니까 정치지도자들의 사상에 대한 공부보다 정치 토론이 수업의 주를 이룬다고 하더군요. 군사독재 시절 우리의 국민윤리 수업과 비슷한 것같았습니다.


  흔히 중국 사람들은 보통 마오를 아주 존경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곳에 살면서 미묘한 변화를 느꼈습니다.
  중부 내륙이나 동북지방 등은 모르지만, 적어도 상하이에서 마오는 찬밥 대우를 받고 있었습니다. 교통대 교수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마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는데 예상외로 비판적인 답이 돌아왔습니다. 한 교수가 “그 때문에 중국 발전이 30년은 늦어졌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또 “문화대혁명 때 어땠는지 아느냐”고 반문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에 가기 전에 마오나 덩 같은 중국 정치지도자에 대한 비판을 삼가라는 말을 들은 저로서는 의외였습니다. 일부러 그의 적잖은 공에 대해 설명했지만, 그는 별로 귀담아 듣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내의 상하이인 친구 장궈롱(張國榮)도 술자리에서 마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그를 덩보다 한 수 아래의 인물로 평가하더군요. 그는 “현대 중국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덩샤오핑과 주룽지”라고 단언했습니다.
  그외에도 마오에 대한 상하이 사람들의 홀대(?)를 목격한 순간은 많았습니다. 마오와 그의 후계자로 각광받았던 린비아오(林彪)에 얽힌 뒷얘기는 중국 지식인들의 흔한 대화 주제 중 하나인데, 늘 이런 식으로 시작합니다. “마오, 그 영감이.”
  심지어 택시기사가 대놓고 마오와 문화대혁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장면을 본 적도 있었지요. 이쯤 되면 상하이 사람들이 마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짐작이 가실 겁니다.


  물론 중국 공산당의 어르신들이 봤다면 아마도 ‘돈에 타락해서 위대한 국부를 발톱에 때처럼 생각한다’고 일갈을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상하이 사람들처럼 노골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지만 다른 지역에서도 마오에 대한 대접은 예전같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작년 마오 탄생 110주년을 맞이 했을 때 중국청년보가 내는 주간지 ‘청년참고’는 사설에서 마오의 부활을 누누이 강조했습니다. 마오 시대의 검소한 생활, 그의 뜨거운 민족애 등을 강조하면서 부와 황금을 쫓는 현재 중국의 세태를 은근히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오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수억의 중국 인민들에게 그는 여전히 국부이기 때문이죠.  무슨 ‘악의 화신’인 것처럼 일방적으로 매도당해 공은 아예 언급할 엄두도 못내는 우리의 역대 대통령들보다는 수만배 이상 행복할 것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