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김염과 그의 영화를 연구하기 위한 계획서를 한 재단에 제출했다.
연구비 수혜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기회에 김염에 대한 나름의 연구를 시작하려고 한다.
지난 중국여행중 7월 17일로 기억된다.
그날 아침 중국 CCTV 10에서 김염에 대한 다큐가 방영되었다.
호텔식당으로 아침을 먹으러 가자는 친구의 말에
중요한 프로니까 봐야 된다고 혼자가서 먹고 오라고 했는데,
중국어를 못하는 친구는 혼자가는게 안심이 안되는지 빨리 먹고와서 보자고 재촉이었다^^
대충 죽으로 떼우고 빵 몇개를 집어들고는 친구에게 천천히 먹고 올라오라고 하고는
재빨리 방으로 올라와 티비앞에 앉았다.
김염에 대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막 시작되고 있었다.
김염과 그의 출연작을 중심으로 길지않은 간략한 다큐정도였고,
책을 통해서 거의 알고 있는 이야기였지만,
참 우연이다, 라는 생각과 함께 그의 멋진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 또 흥분이 되었다.
김염의 몇몇 출연작을 소개하면서
<쉬리>, <JSA>, <실미도>등의 화면을 함께 교차시켰다.
다시 말해 영화속 김염의 모습들,
그의 절규하는 모습과 <쉬리>의 최민식을 교차시키고
누워있는 김염과 <JSA>에서의 이병헌의 모습,
웃옷을 벗고 달리는 김염과 <실미도>에서 설경구, 허준호등의 모습을 비쳐줬다.
묘한 감동이 느껴지는 화면이었다.
김염과 함께 출연했거나 그를 기억하는 중국 영화계 원로들의 증언에서
또 다른 감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김염이 3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여러가지 요인들 중,
당시 김염의 등장은 기존의 남자배우들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멋지고 세련된, 백마탄 왕자의 분위기였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앞다투어 김염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말도 신선하다.
김염의 사진을 보면, 그 말들을 입증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나 김염이 더욱 매력적인건,
그가 그런 자신의 외모와 인기에 편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화라는 게 여자애들이 눈물이나 흘리는 그런 게 아니다"라는 말,
그는 자신의 확고한 가치관을 평생 지켜나간 인물이다.
항일정신을 강하게 투영하고 있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진취적이고 개척적인 용감한 젊은이상을 구축했고,
그의 인기를 이용해 선전도구로 삼으려는 일본의 집요한 제안과 협박에 불응
영화를 접고 상해를 탈출한다.
김염은 건축에 뜻을 두기도 했고,
조종사를 희망하기도 했다.
여러스포츠와 미술등을 즐기는
그대로 다재다능한 사람이기도 했다.
김염은 신중국 성립후에도
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에서 그에게 영화계 고위직을 맡긴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예우를 지켰던 것으로 보인다.
김염과 그의 영화에는
중국과 한국의 굴곡많은 현대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것 중의 하나,
한국인으로서의 김염의 모습이다.
30년대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한국인들을 지원했다는 점과
김산을 만난적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50년대에 북한에 계신 어머니를 방문했다는 사실 속에서
그의 모습과 생각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다.
물론 중국이나 한국 어느 한쪽에서의 입장만을 견지할수는 없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독립운동을 하던 아버지가 계셨지만, 또한 동시에
중국으로 입적하고 중국말을 사용하고
중국영화에 출연하고 중국사람과 결혼하고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중국과 한국을 모두 사랑했다고 볼수 있다.
김염은 중국영화의 황제이기도 하고,
말하자면 최초의 한류스타일수도 있으며,
독립운동가의 아들이기도 하다.
동시에 그의 행적을 따라
우리의 현대사를 돌아볼수도 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고,
높은 평가와 함께 적극적인 재조명, 합당한 예우가 따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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