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광·민박

[스크랩] 신이 내린 인간선경: 九寨溝/黃龍

데코차이나 2005. 12. 19. 11:20

 

* 사진 설명: 석양에 아름다움을 뽐내는 쓰촨(四川)의 한 평야지대.

한국인에게 있어서의 쓰촨

우리에게 쓰촨(四川)은 무슨 이미지로 다가올까? 첫째로는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였던 덩샤오핑(鄧小平)을 떠오를 수 있다. 156cm의 작은 단구로, 인구 13억의 중국 대륙을 호령했던 덩은 1억 2천만명이 바글대면서 사는 쓰촨지역 사람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덩은 자신이 추종한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세 번이나 권력 울타리에서 쫓겨나 사지의 문턱까지 떨어졌었다. 하지만 '부따오웡'(不倒翁, 오뚝이)이라는 별명처럼 꺾이지 않는 의지로 다시 재기하여, 결국은 중국 최고의 정치지도자 자리를 거머쥔 불굴의 쓰촨인이다. 둘째로 쓰촨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삼국지'(三國演義)를 들 수 있다. 원대 몽골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골몰했던 나관중이 한족(漢族)을 정신적으로 각성하기 위해 쓴 '삼국지'는 알려진 것처럼 역사서를 바탕으로 둔 장편소설이다.

후한 말엽 중앙집권체제의 약화와 환관세력의 권력농단, 봉건제후의 발흥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위-오-촉 삼국의 성립과 진에 의한 천하통일까지 그린 '삼국지' 후반부의 중심무대 중 하나가 촉(蜀), 지금의 쓰촨이다. 제갈공명이 일찌기 '천하분열론'에서 언급했던 "땅이 비옥하고 물이 넘쳐 농사를 짓기 적당하고, 산세가 험해 외부로부터의 침입이 어려운 천혜의 요새"가 바로 쓰촨인 것이다. 셋째로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로, 맵고 짜기로 유명한 쓰촨요리(川菜)를 들 수 있다. 우리 문인들의 문장에도 심심지 않게 등장하는 마파두부(麻婆豆腐)를 비롯하여 셀 수 없이 많은 맵고 짜고 시큼한 중국음식이 모두 쓰촨에서 유래됐다. 내륙지방인 쓰촨은 식품의 보존과 저장을 위해 고추, 마, 후추 등과 같은 향신료를 많이 사용한다. 이러한 쓰촨요리는 기름기가 많고 느끼한 다른 중국요리와 달리 한국인의 입맛에 딱 제격이다.

대륙 속의 거대국가 쓰촨

쓰촨성은 중국 남서부 장강(長江, 양자강) 상류에 있는 성으로, 성내에 장강(長江) 민강(岷江) 가릉강(嘉陵江) 타강(陀江) 등이 흐르기 때문에 쓰촨(四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 지도를 마치 동쪽을 향해 있는 수탉의 모양이라고 했을 때 쓰촨은 그 배에 해당한다. 면적이 56만9,000㎢인 쓰촨은 동으로 후베이(湖北) 샨시(陝西), 북으로 간쑤(甘肅), 서로 티베트(西藏) 칭하이(靑海), 남으로 윈난(雲南) 구이저우(貴州)와 인접해 있다. 지형은 크게 촨시고원(川西高原)과 쓰촨분지(四川盆地)로 구분할 수 있는데, 쓰촨분지는 해발 300~700m의 구릉과 산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쓰촨고원은 평균해발 3,000m 이상이며 4,500m 이상의 산에는 언제나 만년설이 쌓여 있다. 쓰촨성 내의 7할이 해발 1,000m 이상인 고원이 땅이요, 거대분지의 땅이기도 하다.

장강의 상류지대인 쓰촨성은 또한 다양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문화유물이 발굴되었다. 그중 광한(廣漢)시 교외에서 발굴된 산싱투이(三星堆) 유물은 백미로 꼽힌다. 산싱투이 문화는 신석기와 청동기에 걸친 문물로, 중원의 은대(殷代)와 같은 시대에 존재했던 서주 문명과 전혀 다른 것으로 판명되고 있다. 산싱투이의 유물 중 높이 2.6m의 긴 귀, 튀어난 눈의 기괴한 입상 청동상과 폭 1.4m의 청동가면, 4m에 달하는 청동신수(靑銅神樹), 부상의 태양신, 각종 청동면 등은 질-양면에서 황하문명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학계에서는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찬란한 고대문명의 토대 위에서 오늘날 쓰촨에는 충칭(重慶)을 포함해서 무려 1억 2천만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기에는 한족(漢族) 뿐만 아니라 티베트인(藏族) 이족(彛族) 투쟈족(土家族) 등 여러 종족들이 살고 있어 가히 중국대륙 속에 거대국가라 할 수 있다.

"蜀道之難, 難于上靑天"

쓰촨은 오랜 시간동안 중국의 중앙무대와 동떨어진 세계였다. 한 때 위-오와 더불어 천하통일을 놓고 쟁패했던 촉은 사마염이 이끄는 진에 의해 허망하게 사라졌다. 촉의 멸망이후 간혹 이름없는 지방정권이 등장하긴 하지만, 중국사에 있어 정치적 권력은 언제나 북방인들의 손에 좌우되었다. 여기에 진입하기조차 힘든 험한 쓰촨의 지형은 다른 외지인의 접근마저 가로막아 지역의 발전을 저해했다. 안사의 난이후 장년기를 쓰촨에서 보냈던 당대 시인 이백(李白)은 자신의 시 '촉도난'(蜀道難)에서 이렇게 읊었다. "촉 가는 길은 험하고, 하늘에 오르기 보다 힘들다."(蜀道之難, 難于上靑天) 이백 뿐만 아니라 옛 중국인들은 쓰촨를 왕래할 때면, "무슨 이런 동네가 있담. 물살이 거센 강에 가파른 절벽, 높디높은 산, 정말이지 들어오기 힘들 땅이군"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噫우戱 危乎高哉
아, 아찔하게 높고 험하구나
蜀道之難 難于上靑天
촉 가는 길은 험하고 하늘 오르기만큼 힘들구나
蠶叢及魚鳧 開國何茫然
그 옛날 잠총과 어부가 촉나라를 개국한지 얼마나 아득한가
爾來四萬八千歲 始與秦塞通人煙
그로부터 4만 8천년동안 관중땅 진나라와 내왕이 없었고
西當太白有鳥道 可以橫絶峨眉영
서쪽 태백산 날개질 따라 겨우 아미산에 올랐네
- 이백 촉도난(蜀道難) 앞 소절

게다가 햇볕을 거의 보기 힘들고 후덥지근한 기후 풍토는 건조하고 메마른 대륙성 기후를 보이는 중국 여타 지역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충칭의 경우 연평균 일조시간은 겨우 1,259시간 밖에 안 되지 않고 안개 끼는 날이 68일에 달한다. 이는 중국에서 일조시간이 가장 적은 것으로, 충칭은 공해로 인한 스모그 현상과 더불어 '안개의 도시'(霧都)라는 별칭을 지니고 있다. 얼마나 햇빛을 보기 힘들면 '슈츄엔페이리'(蜀犬吠日,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햇빛을 보고 쓰촨의 개가 해를 보고 짖는다)라는 고사성어까지 낳았을까? 사시사철 흐린 날씨와 여름에는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끈적이는 습한 기후는 사람들의 성격에도 큰 영향을 미쳐 쓰촨인들은 성격이 급하고 다혈질로 중국에서도 유명하다.

쓰촨이 가진 오지들

중국문명의 한 획을 그은 영웅호걸의 주무대였던 쓰촨에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은 오지들이 존재하는 것은 쉽게 믿겨지지 않을지 모른다. 허나 쓰촨에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 여행객의 발길도 닿지 않은 오지가 무수히 널려져 있다. 해발 500m에 위치한 청뚜(成都)를 중심으로 서쪽 고산지대는 높고 험한 산세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어 인간의 발길을 거부하고 있다. 인구 1,100만명에 달하는 대도시 주변에 해발 3,000~4,000m가 넘는 고준설령이 즐비한 사실을 그대는 믿겠는가? 이런 현실 속에 나라 잃은 티베트인의 슬픔이 깊이 숨겨져 있다면 그대는 이해할 수 있겠는가? 거친 고원지대에까지 한족들의 끊임없는 이주가 이루어지고 개발이라는 명목 아래 자연-문화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사실을 그대는 알고 있는지?

첫 오지 여행지 쓰촨을 통해 필자는 한국인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의 아름다운 풍경을 전하는 동시에, 고난의 세월 속에 눈물 흘리는 소수민족의 아픔을 전하려 한다. 팬더와 대나무의 고향 쓰촨의 미려한 산야를 묘사하면서도 그 안에 파괴되어 신음하는 자연 현장을 고발하고자 한다. 영광과 오욕이 뒤범벅이 된 과거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서부 대개발의 중심지로 재도약을 꿈꾸는 쓰촨지역의 오늘을 조명코자 한다. 한국인에게는 아직 낯선 쓰촨의 여행지를 중심으로, 해당 지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풍습 등을 깊이있게 살피어, 한국에서의 중국 지역학 연구에 한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쓰촨이 자랑하는 오지 중 으뜸으로 꼽히는 지우자이꺼우(九寨溝)-황롱(黃龍)-루얼까이(若爾蓋) 일대를 둘러보는 것으로 여행기를 시작하겠다.

 

* 관련사이트: www.chinawes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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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차이나비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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