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악·영화

중국의 전통 악기

데코차이나 2005. 10. 6. 10:52

1.중국민족과 중국악기


중국은  하나의 나라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큰 땅덩어리와 많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 우리 나라의 40배가 넘는 959만Km의 땅에 약 10억의 인구가 살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 인구에서 5명 중 한 사람은 중국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숫자이다. 민족적으로는 물론 한족(漢族)이 94%로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여기에 조선족·만주족·몽고족·키르키즈족·카자흐족·위그루족· 야오족·먀오족 등 50여족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적 양상도 매우 복잡하다.한족은 세계 4대 문명발상지의 하나인 황하유역에서 일찍이 정착민족으로서 생활해 왔다. 이에 비해서 우리의 먼 조상인 몽고족은 유목을 위주로 하는 이동민족이었다. 정착민족과 이동민족의 차이는 우선 식생활에서 큰 차이가 난다.
유목민족은 이동민족에 속하는데, 이들은 양의 먹이인 풀이 많은 곳으로 늘 이동하며 살아야 함으로 음식을 담는 그릇을 많이 준비할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의 그릇에 찌개 같은 음식을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방법을 쓴다.

그리고 그릇 수를 줄이기 위해서 한꺼번에 모든 음식을 상위에 올려놓고, 가급적이면 가지수를 많이 준비하지 않고 단출한 음식을 먹게 된다. 그러나 정착민족은 식사과정에서 많은 그릇을 쓴다.
그리고 음식의 종류도 다양하다. 음식을 한꺼번에 만들어서 식게 되면 맛이 없으므로 음식을 준비하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가져온다. 그래서 중국땅에 식사문화가 발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중국민족이 정착민족이었다는 이점에, 주위의 여러 민족의 음식을 수용하여 더욱 다양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음악문화도 식사문화와 흡사하다. 정착민족의 악기는 크다. 악기가 한 곳에 자리잡게 되면 이동할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에 크게 만든다 하더라도 별 불편함을 못 느낀다. 중국사람들이 아끼는 편종·편경·쟁·금 등은 다른 민족의 악기에 비해 엄청나게 크다. 돌을 깎아만든 편경은 중국 아악에서 매우 중요한 악기인데 이 악기는 2,000년 전 악기가 출토될 만큼 오랫동안 중국인들이 즐겨 쓰던 악기였다.

(1)몽고에서 유입된 얼후(二胡)
이동민족의 악기 중에서 중국악기로 수용된 악기로는 얼후(二胡)를 들 수 있다. 얼후는 조그만 통에 기둥을 세우고 두 줄을 메우고, 두 줄 사이에 활을 걸쳐놓고 활로 줄을 문질러서 소리낸다. 이 악기는 중국인들이 오랑캐라고 부르던 몽고족의 악기였는데, 원래 말 위에서도 연주하기 편리하도록 두 줄 사이에 활을 끼워 넣었다고 한다. 몽고에서는 이 악기를 마두금(馬頭琴)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찰현악기는 아시아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해금으로, 중국에서는 얼후(二胡)로, 일본에서는 고뀨 (胡弓)로, 태국에서는 소우 또는 소두앙으로 부르면서 애용하고 있다.

(2)중국인의 강한 애착이 담긴 금(琴)

중국에서 가장 오랜 고유악기로는 금(琴)이 있다. 기원 전 18세기 상(商)시대에 이미 금을 사용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다. 뼈·거북·청동기 등의 갑골문자를 조사해 보면 옛날에 악(樂)자가 나타난다. 여기에 나타난 악의 의미는 "비단실을 나무에 매놓고 뜯는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후 악이라는 말은 음악을 나타내는 일반용어로 발전하였다. 중국인의 금에 대한 애착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들은 금을 조상과의 영적인 대화나 하늘과 인간의 조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도 하고 또한 금을 인격 수양의 중요한 도구로 생각했다. 금의 길이가 3자6치5푼으로 되어 있는 것은 일년 365일을 나타내는 것이고, 바닥쪽에 소리가 나오는 큰 구멍이 두개 있는데 이 구멍이 8치이다.
이것은 바람이 불어오는 8방을 나타내고 용지(龍池)라고 부른다. 윗 판은 오동나무로 만드는데 하늘을 상징해서 불룩하며, 아랫판은 밤나무로 만드는데 땅을 상징해서 평평하다. 이와 같은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三才思想)은 하늘·땅·연주자가 삼재라는 철학으로 금은 곧 우주질서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약 3,000년전에 발생한 금은 중국의 쟁(箏)과 슬(瑟), 일본의 고도와 화금(和琴), 우리 나라 거문고와 가야고, 베트남의 단트란(Dantranh)의 생성과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금은 이미 기원 전 14-15세기의 주시대에 예술음악·오락음악·의식음악에 중요하게 사용하였다.
부부간의 의가 좋은 것을 '금슬(琴瑟)이 좋다'라는 말에서 보듯이 금은 독주뿐 아니라 슬·생(笙)·비파와의 합주로도 즐겨 사용하였다. 금은 비단실을 꼬아서 만든 줄을 쓰는데 각각 굵기가 다른 7줄을 쓴다. 줄은 옥이나 옥처럼 딱딱한 것으로 만든 2개의 줄조리개에 둥글게 감겨져 있고, 7개의 돌괘로 조인다.
금은 안족(雁足)과 괘가 없고 줄아래 자개로 만든 13개의 휘(徽)가 1줄로 배열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휘가 배열되어 있다고 해서 이것을 휘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금은 거문고의 괘나 가야고의 안족과 같은 것이 없어 평평한 판위의 휘를 손으로 짚어 연주하기 때문에 소리가 매우 섬세하고 예민하지만 음량이 매우 작다.
그래서 금은 오늘날과 같은 대규모의 청중을 위한 연주에는 알맞지 않고 사랑방 연주와 같은 분위기에 적절한 악기이다. 금의 매력은 우리 나라의 거문고와 같이 농현과 끌어 올리고(추성) 끌어 내리는(퇴성) 수법과 배음(倍音)을 이용한 하모닉스 연주법이다.

기원전 7세기 경 관자는 금의 하모닉스 연주법을 이용하여 음에 관한 수학적인 이론을 만들었다. 관자는 완전5도와 완전4도를 계속 만들어내는 2:3과 4:3의 원리, 즉 삼분손익법(三分損益法)을 만든 것이다. 삼분손익법으로 만들어진 처음 다섯음이 도·레·미·솔·라의 5음계가 된다. 금 이론은 중국 음악이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금은 괘나 안족이 없기 때문에 이론을 적용시키는 방법이 매우 독창적일뿐 아니라, 어떤 종류의 음악도 적용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금을 만들 때에 가장 중요한 비법은 표면에 칠하는 옷칠이다. 특별히 만든 칠을 오동나무에 여러 번 칠하는 작업은 장인(匠人) 사이에 비밀로 되어 있다. 옷칠을 한 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밀한 균열이 생기는데 이 균열이 은은한 아름다움을 만드는 동시에, 얼마나 오래된 악기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증거가 된다. 또한 뒷판에 새겨진 소장자의 이름이나 금을 칭송하는 싯구 등도 금의 연대를 측정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3)향비파와 당비파


향비파란 오현에 직경으로, 사현에 곡경인 당비파와는 다르다. 삼국사기에 "향비파는 당나라제도와 대동소이하며, 신라에서 비롯하였으나 누가 만들었는지는 알수 없다."라고 적고있다. 향비파는 삼현 삼죽에 속하는 우리의 전통 현악기이다.
삼현은 거문고, 가야고, 향비파이고, 삼죽은 대금, 중금, 소금이다. 오현비파는 오현이라고도 하며 서역 악기로 중국을 통하여 전래 되었다. 중국 수, 당 시기의 '구부기' 및 '심부기' 중 청악과 연악에는 없고, 서량, 구자, 소륵, 안국, 천축 등 서역계 악에만 사용되었다. 이와같이 오현비파는 중국에서 고구려를 거쳐 신라로 전해진 것이다.
일본내량정창원에 수장되어 있는 오현비파는 뒷판에 나전꽃무늬가 있고, 대모가 붙어있고 그 위에는 낙타를 타고 있는 호인이 비파를 연주하는 그림이 그려있다.이는 당나라때(AD 756년) 일본에 선물한 것으로, 다섯줄에 곧은목, 5개의 주를 갖고 있다. 악학궤범에는 향비파를 제법, 각 부위의 명칭 및 그 길이, 조 및 연주법에 대한 설명을 적고 있다.
모두 10개의 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술대로 연주한다. 향비파는 오현비파와 외형상 비숫하며, 그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으나 주의 수 및 그 위치, 줄의 배치법, 왼손 및 오른손의 연주법등으로 볼때, 당나라 때의 오현 비파와는 완전히 다르다.
즉, 향비파는 오현비파가 전래된 후 거문고의 연주법을 수용하여 신라에서 새롭게 만든 악기이다. 향비파는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노래와 춤의 반주에 사용되었다. 1930년대까지 이왕직 아악부에서 연주되었으나, 아깝게도 실전되었으며 1988년 주의 수를 31개로 늘려 음역을 확대하였고, 전통곡뿐만 아니라 창작음악에 연주할 수 있도록 복원 개량하며 전통악곡뿐만 아니라 창작음악에 연주할 수 있도록 복원 개량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다.


당비파란 네 줄에 굽은 목을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비파라고 부른다. <석명>과 <풍속통의>에 의하면 비파는 본래 북쪽 오랑캐 지역에서 말위에 앉아 연주하던 것으로, 손으로 연주할때의 동작을 본따 이를 삼았다.
즉, 손을 밖으로 내미는 것은 '비'라고 하고, 안으로 끌어 당기는 것을 '파'라 하는데서 비파라고 이름을 하였고, 이는 본래 중국의 악기가 아니며, 서역으로부터 중국에 전해진 악기이다. 우리나라에 당비파에 대한 문헌은 고구려 식화지 문종 삼십년초에 <당비파>가 있었다는 기록과 682년 창건된 감은 사의 청동제 사리기의 봉수비파, 673년(문무왕 13년)으로 추정되는 비암사의 계유명 아미타불의 부조,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적멸탑신, 상원사의 동종등의 불교 유적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려사>에 당비파의 이름이 보이며, 조선시대 세종때는 관습도감의 여기에서 모두 당비파를 배우게 하였고, 어전례언의 향악에 당비파가 편정되었으며, 성종때는 사서인이 음악을 배울때는 반드시 이 당비파를 먼저 배우게 하였다.
악학궤범에는 당비파의 조현도해와 제법 및 탄법에 대한 설명이 있다. 즉, 당악을 탈 때는 발목을 사용하고, 향약을 탈 때는 가조를 사용한다. 당비파의 모습은 일제시대 이왕직 아악부의 국악공개연주 모습에서 볼 수 있었으나, 실전 되었으며, 1988년 괘의 수를 26개로 늘려 음역을 넓히고, 창작음악에 사용되도록 복원개량 하였다.


(4)디지(적자)

디지는 중국어로 竹笛 혹은 笛子라고 하는데, 한개의 취구(吹口), 청공(淸孔) 하나, 지공(指孔) 여섯, 그리고 칠성공(七星孔)이 앞뒤 2개씩 있고, 청을 보호하고 음색의 조절을 위한 청가리개(디막)가 있다. 이 중에서 취구는 김을 불어넣는 곳이며, 청공은 일종의 떨림판 역할을 하는 청(갈대의 속 껍질)을 붙이는 곳이다. 지공은 손가락을 막고 뗌으로써 음정을 조절하며, 칠성공은 전체 음정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음역은 약 3옥타브로 저음부[低吹域 : 順吹域], 중음부[平吹域], 고음부 [高吹域 : 力吹域]로 나누기도 하는데, 음역에 따라 저음부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중음부는 안정되고 청아하며, 고음부는 시원하고 장쾌한 느낌을 준다.

2. 현재의 중국악기
중국이 거의 모든 전통악기들은 새롭게 개량되었다. 이러한 개량사업은 1949년 이후 중국음악협회와 음악개선위원회에서 주도되었다. 이들은 우선 악기의 규격을 표준화시키고 제조법을 과학화시켜 대량생산이 가능토록 하였다. 이러한 대량생산은 악기 값이 싸져서 대중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관악기는 덮개를 붙여 반음을 내기 쉽도록 개량하여 전조를 편하게 하였다.
또 비파같은 현악기는 음역을 늘이기 위해 울림통을 개량하고 줄과 괘의 수를 늘여 음역을 확장하였다. 그리고 얼후(二胡)같은 악기는 전통악기의 모양은 그대로 두고 첼로와 같은 낮은 음을 내도록 개량하여 종류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중호(中胡)는 중간음역을, 대호(大胡)는 낮은 음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합주 음악에서 저음이 보강되어 울림이 풍부하게 되었다.
1,959년 북경에서 북경악기제조협회에서 악기 개량에 관한 세미나와 전시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때 약 140종류의 개량악기가 소개되었다. 이렇게 악기가 바뀌게 되자 음악의 내용도 바뀌게 되었다. 조율법으로는 서양의 평균율이 도입되고 화음을 사용하게 되었고 관현악에 서양악기를 수용하게 되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우리 나라의 국악관현악단과 같은 악단을 민족악단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플룻이나 오보에·첼로·더블베이스등이 자연스레 편성되어 함께 연주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관현악의 음향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악기의 연주법에 서양악기의 기법을 도입하여 놀랄 만큼 연주기교가 향상되었다.

이러한 평균율의 도입과 악기개량은 필연적으로 전통음악의 변질을 가져왔다. 이러한 변질을 아쉬워하고 재래악기를 고수하고 전통기교를 보존하려는 연주가도 많이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음악가는 금(琴)연주가인 오조기(吳兆基) 같은 사람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현재 전통악기의 개량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서 이성천씨는 12줄의 가야고를 21줄로 개량하였고, 이재화씨는 6줄의 거문고를 7줄로 개량하였다. 이러한 악기개량은 중국이나 일본·대만·홍콩·북한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시도되어 이제는 완전히 정착되었다. 우리 나라의 전통악기 개량사업에 이러한 외국의 사례들을 참고로 한다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있었던 전통의 변질에 유념해서 연구한다면 전통은 전통대로 고스란히 보존하고 악기도 개량하여 음악을 풍성하게 한다면 이것이 악기개량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동북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개량악기를 공통으로 사용하게 되면 이들 각국 음악인의 합주가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한다면 이는 유럽 음악권에 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음악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